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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토는 황폐해졌고 생산 시설과 건물, 도로, 철
도 등 주요 시설물이 파괴되어 복구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다. 또한 숭례문, 보신각 등 수
많은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불타 없어지기도 하였다.
6·25 전쟁은 남북한 서로에게 적대감과 상처를 남
겼고, 이산가족 문제, 남북 교류와 평화 통일 문제 등
은 현재까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폐허가 된 세종로
6·25 전쟁이 남긴 상처
이산가족 문제 해외 입양 문제
6·25 전쟁 이후 6·25 전쟁으로 10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가
우리나라에서는 수 생겨났다. 이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많은 이산가족이 생 겪자 정부에서는 1954년부터 사회 복지 기관을
겨났다. 이후 흩어진 통해 해외 입양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산가족을 찾기 위 부모를 잃은 수많은 아이는 미국을 비롯한 외
해서 1983년에 KBS 국으로 입양되었다. 1980년대에 우리나라 경제
에서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의 상봉 가 발전하면서 해외 입양은 크게 줄었으나, 여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방영되었다. 전히 계속되고 있다.
10만 건이 넘는 신청이 접수되었고 5만 건이
방송에 소개되어 10,189건의 이산가족이 상봉
하였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이산가족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만, 신청자들이 고령
화되면서 이산가족을 만날 가능성은 점점 줄어
들고 있다.
전세기 편으로 미국에 도착한 한국 입양아들
1953년 7월 ( )이/가 그어지면서 남과 북이 분단되었다.
3.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6·25 전쟁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