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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의 전개 과정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은 서울에서 독립 선 시위 건수 시위 참가자
총 1,798건 총 1,067,886명
언서를 낭독하였다. 같은 시각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은 100 이하 시위 발생 지역
100~200 백두산
200~300
탑골 공원(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 300~400
400 이상
하고 만세를 불렀다. 수많은 시민이 참여하면서 서울 함경도
평안도 144
거리는 만세 소리로 뒤덮였다. 276
강원도
황해도 81
이로부터 석 달 동안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끊이지 않 180
동 해
황 해
고 일어났다. 처음에는 서울의 학생과 지식인들이 중심 경기도
415
이었으나, 이후 농민과 노동자 등이 참여하는 전 민족적 경상도
충청도 273
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225
전라도 국외
일제는 평화적인 만세 운동을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 89 남 해 115
여 총칼로 진압하였다. 이 때문에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 2016]
전국 만세 시위 건수
가 발생하였다.
휙
탕 탕 휙
감옥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만세 소리, 유관순
1919년 3·1 운동 당시, 만세 시위에 참가한 유관순은 이화 학당이 문을
닫자 천안의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
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유관순은 1920년 3·1 운동 1주년이 되자 감옥 안에서도 만세 시위를 벌
였다. 수감자들이 호응하여 만세 소리가 밖으로 퍼지자 형무소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하였다. 일제는 유관순을 심하게 고문하였고,
결국 그녀는 18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순국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침.
2. 일제의 침략과 광복을 위한 노력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