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ele_society_5-2
P. 28
4 발해의 건국과 발전 과정을
알아볼까요
말갈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 당은 고구려 유민들을
강제로 중국 곳곳에 옮겨 살게 하였다. 고구려
거란
출신인 대조영은 요서 지역에 끌려가 살고 있었다.
발해
상경 용천부
쑹화강
당 동모산 그는 당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고구려 유민과
랴오허강 두만 말갈족을 이끌고 탈출하여 만주 동모산 근처에
요서 지방 강
압록 강
요동 지방 도읍을 정하고 발해를 건국하였다.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동 해
한강
황 해 내세웠다. 발해는 처음에 당과 사이가 좋지 않았
신라
금성(경주) 지만, 이후 당과 교류하면서 당의 제도와 문물을
일본
발해의 최대 영토 남 해 받아들였다.
발해는 영토를 넓히고 일본 등 주변 나라와 활발
말갈족 6~10세기경 한반도 하게 무역을 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에 당은 발해를 ‘바다
북부와 만주 동북부 지역에 거
주했던 종족. 동쪽에서 기운차게 일어나 번성하는 나라’라는 뜻에서 해동성국이라고
불렀다.
발해와 신라의 경쟁
당에는 외국인을 위한 과거 시험이 있었다. 872년에 이 시험에서 발해의
유학생인 오소도가 일 등으로 합격하고, 신라의 유학생인 이동이 이 등을 차지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신라인은 조롱거리가 되었다며 분하게 여겼다.
906년에 오소도의 아들 오광찬이 당의 시험에 합격하였다.
이때 신라의 최언위가 오광찬을 제치고 합격하자, 오소도는 모자와 신발이
아들의 순위를 최언위보다 올려 달라고 당에 요구하였으나 거꾸로 뒤바뀐 것과 같은
부끄러운 일이다.
거절당하였다.
26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