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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리
➋ 몽골과의 전쟁
• 고려의 저항: 몽골이 약 30년 동안 여러 차
례 침입함. → 고려군과 백성이 끝까지 몽
골에 맞서 싸움, 팔만대장경을 만듦. 고려의 저항
• 전쟁의 결과: 국토가 황폐해짐, 수많은 사
람이 죽거나 몽골에 포로로 끌려감, 황룡사 몽골은 약 30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하였다. 고려군과
9층 목탑과 초조대장경 등이 불타 버림.
백성은 몽골에 끝까지 맞서 싸워 몽골군을 물리쳤다.
➌ 고려와 몽골의 강화
• 오랜 전쟁으로 백성이 큰 어려움을 겪음,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국토가 황폐해졌으며, 수많은 사람이
지배층 안에서도 강화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음. → 고려 정부는 몽골과 강화한 후 개 죽거나 몽골에 포로로 끌려갔다. 또한 몽골군의 침입으로 황룡사 9층
경으로 돌아옴.
• 삼별초가 개경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에 반 목탑과 초조대장경 등이 불타 버렸다.
대하고 끝까지 맞섬. → 고려와 몽골의 연
합군에 진압됨.
강화 싸우던 두 편이 싸움을 고려와 몽골의 강화
그치고 평화로운 상태가 됨.
몽골과의 오랜 전쟁으로 백성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에 지친
지배층 안에서도 몽골과 강화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결국 고려는
몽골과 강화하고 개경으로 돌아왔다.
삼별초 최씨 무신 정권 시기에 그러나 삼별초는 개경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을 반대하며 끝까지 맞서
만들어져 경찰 및 전투의 임무를
맡았던 부대. 싸웠다.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도로 옮겨 가며 저항하였지만,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에 진압되었다.
보충 설명 삼별초의 항쟁
1270년 6월에 고려 정부가 개경 환도를 단행하면서 왕이 삼별초의 해산
령까지 내리자,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봉기하였습니다. 이들은 왕족인 승
화후 온을 왕으로 세우고 진도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들이 진도를 새로운 백두산 몽골의 침입로
삼별초의 이동
거점으로 정한 것은 개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강화도에 비해 몽골군의 삼별초의 항전
공격을 방어하는 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도에서 1년여 항 삼별초의 세력권
전을 이어 가던 삼별초는 병력과 물량을 앞세운 고려와 몽골 연합군의 몽골(원)
급습으로 혼란에 빠져 제주도로 탈출하였습니다. 하지만 1273년에 마지 의주
막 근거지인 항파두리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철주 귀주
안북부 화주
고주
서경 강동 등주
황주
고려
개경 동주 동 해
남경
강화도
강화도 천도 처인성 우산
(1232) 원주
충주
팔만대장경 간행 안동
(1236~1251) 공주 상주 초조대장경
소실(1232)
황 해
전주
대구 동경
삼별초의 항쟁 담양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 삼별초는 토성을 쌓아 (1270~1271) 합포(창원) 김해 동래
나주
고려와 몽골 연합군에 대항하였다. 남해 거제
장흥 황룡사 9층 목탑
진도(용장성) 소실(1238)
남 해
삼별초의 최후 항쟁
(1271~1273) 탐라 몽골의 침입과 고려의 저항
46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