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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화기 조선 사람들이
꿈꾸던 나라 를 알아볼까요
개화를 둘러싼 갈등 1884년 갑신정변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은 개화 정책을 펼쳤다. 해외에 사신을 보내어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제도를 살펴보고, 무기 제조 기술과 군사 훈련법 등을 배워 오도록 하 1894년 청일 전쟁
1894년 갑오개혁
였다. 그러나 정부의 개화 정책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개화 세력은 개혁 방향을 두고 두 갈래로 나뉘었다. 개화 서양 나라의 발전된 문
화와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
온건 개화파 급진 개화파
김홍집 청과의 관계와 전 김옥균
청의 간섭을 물리
통적인 유교 문화를
치고 서양의 법과 기
유지하면서 제한적
술, 제도를 모두 받
으로 서양의 기술을
아들여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개화해야 합니다.
갑신정변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는 조선이 적극적으로 개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약속받고
우정총국 개국 잔치를 기회로 정변을 일으켰다(갑신정변). 이어 새로운 우정총국 조선 후기 우편 업무
를 맡았던 관청.
정부를 구성하고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정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러나 청 군대의 진압과 일본의 배신으로 갑신정변은 3일 만에 일어난 정치상의 급격한 변화.
끝나고 김옥균 등 정변을 주도한 사람들은 일본으로 몸을 피하였다.
갑신정변은 새로운 조선을 만들려는 개혁 시도였지만, 외세의 힘을 빌
렸고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지 못해 실패로 끝났다.
1. 새로운 사회를 향한 움직임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