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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이전 조선의 상황
후금 임진왜란 이후 만주에서는 후금이 일어나 힘이 약해진
명을 위협하였다. 명은 후금을 몰아내기 위해 조선에
동해
조선
군대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황해 일본
조선,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치면서
도와주시오. 남해
조선이 다시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명
하지만 이 정책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에
병자호란 이전 조선과 주변 나라의 모습
대한 의리를 중시하는 신하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이들은
중립 외교 한 나라에 치우치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웠다.
지 않고 각 나라에 같은 중요도
를 두는 외교.
병자호란의 전개
1592년 임진왜란 인조가 명과 친선 관계를 강화하고 후금을 멀리하자, 후금은 조선을
1597년 정유재란 침략하였다. 하지만 조선과 후금이 형제 관계를 맺는다는 조건으로
1627년 정묘호란 전쟁을 끝냈다(정묘호란). 이후 후금은 세력을 키워 나라 이름을 청으로
1636년 병자호란 고쳤다. 청은 조선에, 두 나라의 관계를 임금과 신하의 관계로 바꿀 것을
요구하였는데, 조선이 이에 응하지 않자 다시 쳐들어왔다(병자호란).
청군은 빠른 속도로 한양으로 내려왔고 인조와 신하들은 강화도로
피신하려다가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식량과 무기가 부족하여 오랜 기간 전쟁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성안
에서 신하들은 청과 싸우자는 입장과 청과 화의하자는 입장으로 나뉘
삼전도 오늘날 서울특별시 송
파구에 있는 나루터로, 조선 시 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결국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와 45일 만에
대에 한양과 남한산성을 이어
주던 나루.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였다.
명과의 의리를 저버리고
오랑캐인 청에 항복할 수
지금 조선은 식량과 무기가
없습니다. 임금과 신하, 백성이
부족하여 청에 맞서 싸우기 어려운 힘을 합친다면 청을 물리칠 수
상황입니다. 청에 화의를 청하고
있을 것입니다.
뒷날을 꾀해야 할 것입니다.
남한산성
최명길 김상헌
74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