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3 - ele_society_5-1_tutor
P. 233
수업 참고 자료
1 2 차시 능한 사람으로 분류하여 직업을 갖고 자립하도록 유도
~
하는 한편, 명과학이나 관습도감에 이들만을 위한 관직 2
옛날의 사례를 통한 인권 교육의 방법
을 설치하여 다른 관원들처럼 벼슬과 녹봉을 주었다. 단원
조선 시대에서 사례를 가져와 오늘날의 인권을 설명하 - 손구하, 『인문 사회 21』 10권 1호, 「조선 시대 시각 장애인의
고 싶다면 ‘과거와 현재의 문화적 거리를 인식’하게 하는 구휼과 직업에 관한 고찰」, 아시아문화학술원, 2019, 880쪽 -
방식, 즉 과거의 인간 존중 사상과 오늘날의 인권 사상을
연속과 변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조선 시대에도
신분이나 성별에 따라 차별받았던 사람들의 문제를 인륜 3 차시
의 측면에서 함께 고민하거나 함께 아파했던 인물이 있었 노비에 대한 성호 이익의 생각
고, 또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고 했던 인물이나
우리나라 노비의 법은 천하 고금에 없는 법이다. 한번
사건도 있다. 그러한 인물과 사건을 단편적으로 다룰 것
노비가 되면 백세토록 고역을 겪으니 그것도 불쌍한데
이 아니라 그들은 어떤 사회 구조와 문화적 맥락에서 그
하물며 법에 있어서는 반드시 어미의 신역을 따름에 있
러한 행위를 했는지 생각해 보게 하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어서랴? (중략) 더구나 남의 집에 붙어 우러러 신역하는
인간 존중 사상과 문화를 가르치고, 또 현재와 다른 과거
자를 학대하고 괴롭혀 살아갈 수 없게 하니 이처럼 궁한
의 사회 구조로서 신분 질서와 가부장적 구조를 탐구하게
백성은 천하에 없을 것이다.
해야 한다.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가 문화적으로 또는 구
도연명(陶淵明)은 “노비도 사람의 자식이니 잘 대우해
조적으로 차이가 있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야 한다.”라고 했으니, 이른바 사람의 도리로써 사람을
부린다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또 옛
조선 시대의 인권 문제
날에 원모(元某)는 그 자녀들에게 훈계하기를, “자기 일
인권 사상은 근대 서구의 계몽주의로부터 발원하는 에 부지런하고 남의 일에 게으른 것은 누구나 다 같은 심
바, (중략) 한편, 우리의 근대화는 서구화의 과정이었기 정인데, 노비는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매일 하는 일이
때문에 우리의 전통은 ‘인권을 무시한 야만’으로 폄하되 모두가 남의 일이니 어찌 일마다 마음을 극진히 할 수 있
기 일쑤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학자 이샤이의 『세계 인 겠느냐? 다만 너그럽게 용서하고 노여워하지 말라.”라
권 사상사』에서는 인권 사상의 전사(前史)로 동서양의 고 했으니, 이 말이야말로 과연 그러하다.
고전 사상을 두루 망라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인 - 이익, 『성호사설』, 「인사문」 -
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느 문화권이든 공유하고 있는
내용이다. 다만 기본적 인권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허균과 허난설헌
구체적 내용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략) 조선 시대 난설헌의 동생 허균은 문과 급제 후 여러 관직을 거쳤
의 기본 이념은 인륜을 통해서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이 지만 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다. 명나라 사신들과 교류하면
었다. 다만 신분 차별과 남녀 차별이 엄존하였고, 사생 서 누이 난설헌의 시문들을 전해 주어 중국에서 난설헌
활의 자유가 많이 제약되었다는 것을 그 한계로 지적할 시집이 나오게 되었다. 허균은 형조와 예조 판서를 지냈
수 있을 것이다. 고 역적의 누명을 쓰고 나이 50세에 처형되었다. (중략)
- 이상익, 『정치사상연구』, 18권 1호, 「조선 시대의 인권 문제」, 허균이 생원시에 합격하던 1589년에 난설헌은 세상
한국정치사상학회, 2012, 53쪽 -
을 떠났다. 누이의 죽음을 슬퍼한 허균은 「훼벽사」를 짓
고 이듬해 누이의 유작 210편을 모아 문집을 엮었다. 그
조선 시대에 시각 장애인을 배려하는 정책 해 11월에는 스승 유성룡을 찾아가 서문을 받았다. 『난
조선 시대 맹인은 (중략) 국가에서도 이들을 자립 가 설헌집』은 허균이 공주 목사로 부임한 1608년에 목판본
인권 존중과 정의로운 사회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