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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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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차시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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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00 km
고조선 명칭 비파형 동검
탁자식 고인돌
미송리식 토기
처음 역사책에 등장할 때 ‘조선’이라고 하였다. 고조선 고조선 관련 문화 범위
이라는 명칭은 『삼국유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때 고 오 허 강
조선이라고 한 것은 기자 조선이나 위만 조선과 구분하 다 링 강 랴 백두산
기 위해서였다. 그 뒤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에서는 단 압 록 강
군 조선을 ‘전 조선’, 기자 조선을 ‘후 조선’이라고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고조선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되었 평양
동 해
는데, 이는 이씨 조선과 구분되는 ‘고대의 조선’이라는 구월산
마니산
의미이다. 고조선이 포괄하는 범위에 대해서는 기원전 한 강
황 해
부여
2세기 초에 위만 조선이 등장하기 전에 존재한 조선만을 낙
동
강
칭하는 경우와 위만 조선까지 포괄하여 고조선이라고
칭하는 경우로 나뉜다. 정치사적 측면에서는 전자를 취 남 해
제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위만 조선의 사회 문화가 앞
시기의 조선과 이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에, 사회 문화적
▲ 고조선의 문화 범위
측면에서는 위만 조선 시기까지를 포괄하여 고조선이라
- 강종훈 외,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1』,
고 한다.
웅진지식하우스, 2015, 63~64쪽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www.encykorea.aks.ac.kr) -
3 4 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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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사람들의 생활권
고조선을 세운 정치 세력들은 공간적으로는 오늘날 율령
요서(랴오닝) 지역과 한반도의 서북부에 걸쳐 흩어져 살 율령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글자 자체의 의미는
았다. 이 지역은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하였으며, 이곳 법과 제도를 뜻한다. ‘율’은 지금의 형법에 해당하고, ‘영’
주민은 언어와 풍속이 서로 비슷한 예족과 맥족으로 불 은 행정법의 성격을 지닌다. 진·한 이래 중국 왕조들은 강
리는 종족이었다. 고조선은 처음에 조그만 정치 세력이 력한 권력을 가진 황제가 관료를 선발하여 그들을 통해
었지만, 차츰 우세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다른 정치 모든 영토의 인민을 직접 통치하는 국가 통치 방식을 시
세력을 정복하거나 통합하였을 것이다. 행하였는데, 그 방법과 내용을 기록한 것이 율령이다.
고조선 사람들이 남긴 문화를 흔히 ‘비파형 동검 문화’ 우리나라와 일본 등 중국의 주변 국가들은 고대 국가
라고 한다. 비파형 동검을 비롯하여 고인돌, 미송리식 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율령을 도입하여 왕권 중심의 중
토기, 팽이형 토기가 그들의 대 앙 집권 체제를 이루었다. 삼국의 율령 반포는 단순히 법
표적인 유물이다. 특히 탁자식 과 제도를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강력한 왕
고인돌은 요동(랴오둥) 지역에서 권 중심의 권력 구조를 확립하고, 관료제에 입각하여 영
한반도 서북부에 걸쳐 집중적으 토 내의 모든 구성원을 직접 통치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
로 분포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하기 시작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고조선 사람들의 생활권과 문화 고구려는 소수림왕 3년(373)에, 신라는 법흥왕 7년
▲ 미송리식 토기(평안북도
권을 짐작할 수 있다. 의주 출토) (520)에 율령을 반포하였다. 백제는 구체적인 율령 반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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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삶과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