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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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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
                                                                  긴 아들을 찾아 전라북도 남원에서 마산까지 왔으나 찾
                  1~2 차시
                                                                  지 못하였다. 그러다 시위 후 28일이 지난 4월 11일 마
                    이승만 정부의 장기 집권 시도
                                                                  산 합포만 중앙 부두에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부패한 17
                   이승만은 6·25 전쟁 중에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독재                 세 김주열 군의 시신이 떠올랐다. 당시 『부산일보』 마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여당인 자유당을 조직하였고, 장기                   주재 기자였던 허종 기자는 김주열 군의 사진을 찍어 본
                 집권을 위한 개헌을 여러 차례 강행하며 헌정 질서를 무                   사로 보냈다. 『부산일보』는 다음 날인 1960년 4월 12일
                 너뜨렸다. 국회를 통한 대통령 간선제로는 재선이 불가능                   자 1면에 이를 크게 실었고, 소강상태에 빠졌던 시위는
                 하다고 판단한 이승만은 이른바 ‘발췌 개헌’을 강행하였                   전국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백골단을 비롯한 폭력 단체를 동                      - 모지현, 『한국 현대사 100년 100개의 기억』, 더좋은책, 2019,
                 원해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야당 국회 의원들을 헌                                                     267~268쪽 -
                 병대로 연행한 가운데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
                 을 기립 표결로 통과시켰다(1952. 7.). 이후 대통령의 중
                                                                     4·19 혁명의 전개
                 임 제한 규정을 폐지하기 위한 ‘사사오입’ 개헌도 억지로
                 밀어붙였다(1954. 11.).                                   1960. 3. 15.  3·15 부정 선거, 제1차 마산 의거
                   195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이승만은 국가 권력을 마                     1960. 4. 11.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라 발견,
                                                                               제2차 마산 의거
                 치 개인의 사유물처럼 여기며 주로 경찰이나 폭력 집단
                                                                     1960. 4. 18.  고려대학교 학생 3,000여 명의 시위
                 의 힘에 의지하여 장기 독재를 꾀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1960. 4. 19.  전국에서 시위, 경찰의 무차별 발포
                 불신과 불만은 깊어져만 갔다.
                                                                     1960. 4. 25.  대학교수단의 시위
                  - 류승렬,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7: 현대』, 가람기획,
                                                                     1960. 4. 26.  이승만의 하야 발표
                                               2016, 500~501쪽 -
                                                                     - 기록으로 보는 4·19 혁명(theme.archives.go.kr/next/419/
                    3·15 부정 선거                                                                     viewMain.do) -
                   이승만 정권은 최인규 내무부 장관의 지휘 아래 1959

                 년 11월경부터 치밀하게 부정 선거를 준비하였다. 최인
                                                                     4·25 대학교수단의 시국 선언문
                 규는 지방 자치 단체장을 불러 놓고 “세계 역사상 대통
                                                                    이번 4·19 참사는 우리 학생 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이
                 령 선거에서 소송이 제기된 일이 있느냐? 법은 나중이니
                                                                  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기를 초래한 중대 사태이다. 이
                 우선 당선시켜 놓고 봐야 한다.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
                                                                  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바로잡지 않으면 이 민족의 불
                 고 징역을 가도 내가 간다.”라고 독려하면서 공무원의
                                                                  행한 운명은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우리 전국 대학
                 부정 선거 개입을 직접 지시하였다. 자유당은 4할 사전
                                                                  교 교수들은 이 비상시국에 대처하여 양심의 호소로서
                 투표, 3인조 투표, 유권자 명부 조작, 완장 부대를 동원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한 위협, 야당 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 수
                                                                  1.  마산, 서울, 기타 각지의 데모는 주권을 빼앗긴 국민
                 조작 등 온갖 기상천외한 부정 선거 방법을 동원하였다.
                                                                    의 울분을 대신하여 궐기한 학생들의 순수한 정의감
                   - 서중석,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웅진지식하우스,
                                                  2020, 240쪽 -      의 발로이며 불의에는 언제나 항거하는 민족정기의
                                                                    표현이다.
                    고등학생 김주열의 죽음                                  4.  누적된 부패의 부정과 횡포로써 민권을 유린하고 민

                   3·15 부정 선거 당일 마산에서는 부정 선거에 항의하                   족적 참극과 국제적 수치를 초래하게 한 현 정부와 집
                 는 시위가 있었다. 시위가 끝나고 한 어머니가 소식이 끊                    권당은 그 책임을 지고 속히 물러가라.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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