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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장려하는 움직임이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한 근대식 무기를 모았다. 이후 북로 군정서와 대한 독
물산 장려 운동은 3·1 운동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민 립군 등의 독립군 연합 부대는 청산리 부근으로 집결하
족 운동의 일환으로 민족 역량 개발을 목적으로 하였다. 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두었다. 청산리 대첩
동시에 민족 기업의 활동을 대변해 주고 민족 기업의 설 역시 유리한 지형을 활용하여 매복 작전과 유인 작전으
립을 촉진한 경제 자립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청산
찾을 수 있다. 리 대첩은 우리 독립 전쟁사에서 가장 큰 승리로 인정받
- 변태섭, 『한국사통론』, 삼영사, 2004, 456쪽 - 고 있다.
- [참조] EBS 다큐, 「광복 75주년 특별 기획 ‘승리의 기억, 봉오동
농촌 계몽 운동 전투·독립군의 위대한 유산, 청산리 전투’」 -
농촌 계몽 운동은 1920년대 초부터 서울 지역 학생과
지식 청년, 문화 단체, 동경 유학생들의 주도로 실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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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특히 유학생이 방학 때 실시한 귀향 계몽 운동은 15 16 차시
큰 주목을 받았다. 또한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맞는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정책
1926년에는 그 기념식을 준비하면서 학계와 언론계, 각
1930년대 이후 일제는 우리 민족을 일본인으로 동화
종 잡지계가 한글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는 운
시켜 ‘충성스럽고 선량한 황국 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황
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배경으로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
국 신민화 정책을 본격 추진하였다. ‘황국 신민 서사’를
자인 한글을 민중에게 보급해야겠다는 필요성이 제기되
아동용과 성인용으로 따로 만들고 일본어로 외우도록
었다.
강요하였다. 아울러 ‘궁성 요배’라고 하여 일본에 있는
1929년 『조선일보』는 귀향 남녀 학생 문자 보급 운동
왕궁을 향해 절을 함으로써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을 표
을 전개하였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라는 구
현하도록 강요하였다.
호를 내세웠고, 교재로 『한글원본』 도 펴냈다.
서울의 남산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중요한 장소나 학
그러나 조선 총독부의 탄압으로 『동아일보』 브나로드
교, 면마다 신사를 세우고 참배하게 하면서 일본의 국가
운동의 금지와 함께 『조선일보』의 문자 보급 운동도 중
종교인 신도(神道)를 강요하였다. 만약 신사 참배를 거
지되었다. 청년 학생들의 민중 계몽 운동은 민족 자강으
부할 경우에는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하였다. 또한 모든
로 독립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자 한 운동이었다.
학교와 관공서에서 한국어의 사용을 절대 금지하고 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
본어만을 ‘국어’로 사용하도록 강요하였다. 1939년부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는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하는 소
위 ‘창씨개명’을 강요하였다. 만일 어길 경우 학교 입학
봉오동 전투는 당시 최강의 일본 정예 부대에 맞선 독
이나 공문서 발급을 금지하고, 식량과 물자의 배급에서
립군의 첫 승리였다. 의병 출신으로 전투 경험이 풍부한
도 제외하였으며 우편물도 전달하지 않았다. 한국인이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과 최진동의 군무 도독부군, 안무
발행하는 신문에 대한 탄압도 강화하였다.
의 국민회군 등이 연합한 독립군 부대가 1920년 6월 봉
- 류승렬,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7 - 현대』,
오동으로 집결하여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가람기획, 2016, 170~172쪽 -
독립군 연합 부대는 지형지물을 활용하며 뛰어난 전략
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국립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청산리 대첩은 신흥 무관 학교에서 북간도 사관 연성 국립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의
소까지 독립군의 체계적인 군사 훈련의 결과로 이룩한 실상을 규명함으로써 성숙한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인
승리였다. 북로 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은 북간도 사관 권과 세계 평화에 대한 교육의 장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
연성소를 설립하여 독립군 정예 장교를 양성하고 다양 으로 건립되었다. 일제의 강제 징용과 관련된 전시물과
262 각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