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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관아의 시설                                       이는 농업을 근본으로 삼고 인구수를 늘려 국가의 재

           • 객사: 국왕을 상징하는 건물로, 수령이 전패와 궐패를                   정과 군역을 튼실히 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여기에 학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                    교를 일으켜 풍속의 교화를 통한 유교 국가의 이상을 실
             는 ‘향궐망배’ 의식을 행하였던 곳이다. 전패와 궐패는                  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각각 ‘전(殿)’ 자, ‘궐(闕)’ 자가 새겨진 나무패인데, 모                        - 이상훈, 「조선 시대 지방 관제와 목민관 한범석」,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14, 166~167쪽 -
             두 임금을 상징한다. 객사는 외국 사신이나 중앙 관리
             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다.
                                                                 ~
           • 동헌: 동헌은 관아의 중심 건물로 수령이 업무를 보는                    19 20 차시
             곳이다. 건물의 중앙에는 마루로 된 넓은 대청이 있
                                                               측우기와 앙부일구
             고, 그 좌우에는 온돌방이 있다.
           • 기타: 성안에는 다양한 관아 건물이 있는데, 고을의 행                  • 측우기: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받아서 강우량을 측
             정 위계와 위치, 규모, 특성, 군사 제도와의 관계 등에                  정하는 기구로, 단순한 원리에 걸맞게 원통형으로 간
             따라 시설물의 종류와 규모가 달랐다. 수령을 보좌하                     단하게 만들어졌다.
             는 자문 기관인 향청, 6방의 수석인 호장의 집무소인                      1441년 8월 서운관에 깊이 2척(41.6cm), 지름 8촌
             부사, 관아의 아전들이 집무하는 작청, 회계 사무를 관                   (16.6cm) 크기의 측우기를 처음으로 설치하여 빗물을
             장하는 공수청, 군장교의 장청, 죄를 다스리던 형방청,                   받아 측량하였다. 측우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빗물이
             노복들의 관노청, 죄인을 가두는 옥사 등이 있었다.                     땅속에 스며든 깊이를 가늠하는 방식으로 강우량을 측

                - 문화재청, 『읍성의 보존 관리 매뉴얼』, 2013, 38~40쪽 -       정하였는데, 측우기의 발명으로 실제 강우량을 정확
                                                              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측우기의 발명에는 농민의 농업 생산을 독려하고 권
              조선의 지방 제도와 수령의 역할
                                                              장하려는 뜻도 담겨 있었다. 강우량은 한 해 농사의 풍
             조선의 건국 과정에 적극 참여하여 왕조 교체에 성공
                                                              흉을 예측하는 중요한 수치였다. 조선은 측우기로 지
           한 신진 사대부는 성리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았
                                                              역별 강우량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대략적으로 각 지
           다. 이들은 성리학에 따른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 중앙 집
                                                              역의 풍흉을 가늠하였다.
           권적 관료 체제의 강화를 목표로 지방 지배 체제를 개편
           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은 고려 시대의 다원적인 지방 제                   • 앙부일구: 물시계에 비해 광범위하게 보급된 시간 측
           도를 일원적인 8도 체제로 전환하여 구획이 명백한 군현                     정 기구로, 조선 말기까지 제작되어 널리 이용되었다.
           중심의 행정 구역으로 개편하고 전국 330여 개의 군현                     돌 받침대 위에 설치하기 위해 크게 만들기도 하고, 휴
           에 수령을 파견하였다.                                       대용으로 아주 작게 만들기도 하였다. 세종 때에 설치

             지방에서 수령이 담당할 임무를 ‘수령칠사’라고 하는                     용으로 앙부일구를 3개 만들었는데, 1개는 경복궁 안
           데, 이는 수령에 대한 인사 고과 기준이 되었다. 『경국대                   에 두고, 나머지 2개는 백성이 볼 수 있도록 혜정교 옆
           전』의 「이전」에 기록된 수령칠사는 다음과 같다.                        과 종묘 남쪽 거리에 각각 설치하였다.
                                                                해시계의 시간 표시 원리는 해의 그림자를 이용하는
             - 농업을 발전시킬 것.
                                                              것이었다. 오목한 표면에 옆으로 13개의 계절선을 그
             - 백성의 호구를 늘릴 것.
                                                              어 놓고, 묘시(오전 5~7시)에서 유시(오후 5~7시)까
             - 학교 교육을 진흥할 것.
                                                              지 시를 나타내는 시각선 7개를 수직으로 표시해 놓았
             -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군대의 기강을 엄격하게 할 것.
                                                              다. 여기에 영침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눈금을 보고
             - 부역을 공평하고 균등하게 부과할 것.
                                                              시간을 알아낼 수 있었다.
             - 소송의 다툼을 적게 할 것.
             -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를 없앨 것.                                            - 권내현 외,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3』,
                                                                                 웅진지식하우스, 2016, 75~76쪽 -


           200    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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